불법반출 ‘분청사기 이선제 묘지’ 환수, 日소장자 유족이 기증

기사입력 : 2017-09-12 22:59
[웹데일리=박성연 기자] 조선 15세기 집현전 학사 필문(蓽門) ‘분청사기 이선제 묘지(粉靑沙器 李先齊 墓誌)’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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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로키 구니에, 김홍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무총장
일본인 도도로키 다카시(1938~2016)의 유족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했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광산이씨도문중은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다시 기증했다.

이선제의 묘지는 지난 1998년 6월 국내 문화재 밀매단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고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소재를 파악했다. 불법 반출품인줄 모르고 구입한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 소장자 사망 후 부인 도도로키 구니에(76)가 고인의 유지에 따라 기증했다.

묘지에는 이선제(1390~1453)의 생몰년과 행적, 가계 관련 내용을 담은 248자가 새겨져 있다. 앞, 옆, 뒷면에 글자를 음각하고 백상감토를 발라 긁어낸 다음 마감하는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다.


이선제의 본관은 광주(光州. 光山으로도 칭함)이다.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부교리, 강원도 관찰사, 예문관 제학(종2품) 등을 지냈다. 사후 이조판서와 예문관 대제학으로 추증됐다. 하지만 5대손 이발(1544~1589)이 동인의 지도자로 서인의 지도자 정철(1536~1593)과 대립하면서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때 그와 일가족은 죽음을 맞았다. 이 때 이선제의 관직은 삭탈당하고 저술도 소실돼 관련 기록을 주로 실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묘지를 만드는 데 쓴 태토(胎土)와 유약의 색은 15세기 중반 제작 분청사기의 특징을 반영한다. 제작연대가 분명하고 위패(位牌) 형태의 기형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국내 소재 15세기 분청사기 묘지 4점이 보물(제577·1428·1459·1830호)로 지정돼 있어 이선제 묘지의 희소성을 가늠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X선 촬영 등 과학적 분석 과정을 통해 묘지가 여러 개의 태토 덩어리를 합쳐 두드려서 편편하게 만든 판으로 제작한 것이며, 묘지 태토의 조밀도와 공기층의 치밀도를 검토한 결과 조선시대 도자기의 일반적인 양상과 동일함을 확인했다.

이달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특별 전시한다. 이후 이선제 묘와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광주의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관, 호남의 중요 인물 관련 문화재로 활용도를 높인다.

도도로키 여사는 “묘지는 한국미술을 가장 애호한 남편이 중요하게 생각한 작품이다. 생전에 남편은 조상을 섬기는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도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은 같기 때문에, 묘지가 예술적 가치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남편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묘지에 새겨진 이선제 다섯째 아들(이형원)이 조선통신사를 이끌고 일본으로 오던 중 쓰시마에서 병을 얻어 미처 임무를 마치지 못하고 순직한 사실을 재단 관계자와 (일본의 고미술상) 와타나베 산포도를 통해 들었다. 이제 그분의 혼이 일본으로 다시 건너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묘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 셈이니, 한국의 후손들이 조상을 더욱 잘 모실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미술을 사랑하고 한일양국의 우호를 생각한 남편을 기리고, 이선제 후손들의 심정을 공경하고자 묘지를 무상증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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