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받아적기] ’토르:라그나로크’, 신화적 영웅의 유쾌한 진화

기사입력 : 2017-11-04 15:49
[웹데일리=이선기 기자] *본 기사 내용에는 작품 이야기 전개가 일부 노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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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토르 라그나로크)

지난달 25일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토르:라그나로크>가 개봉 7일 만에 국내 박스오피스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믿고 보는' 마블 흥행 신화를 어김없이 이어가는 중이다. 톡톡 튀는 유머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내놓는 영화마다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마블의 세계. 그 저력이 대단하다.

이번 작품은 주인공이 ‘토르’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집중된다. 그동안 마블 ‘어벤져스’의 멤버로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메인 트릴로지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폭발적 흥행을 기록한 동료들의 작품들에 비해, 토르의 메인 작품 두 편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했다. 신화적 모티브에서 기인한 토르의 아이덴티티는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려웠다. 항상 자신보다 왕국과 백성을 고뇌해야 하는 '영웅서사'의 숙명 때문이었을까. 토르라는 캐릭터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 스펙트럼은 폭이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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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마크' 긴 머리까지 싹둑. 이 정도면 작정하고 시도한 변신이다. (사진=토르 라그라로크 스틸컷)

그랬던 토르가 마지막 편에서 대담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어벤져스의 분열을 두고 돌연 잠적했던 행보에 대한 항변이기도 하다. 어벤져스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동안 토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번 작품에서는 토르가 그보다 더 큰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세상의 종말 ‘라그나로크’라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절망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아스가르드가 멸망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유쾌’했다. 전편들처럼 어두운 배경 속 영웅적 서사를 예측했던 관객들은 유쾌한 반전에 로튼토마토 지수 96%라는 신선도를 부여했다. 개봉 전부터 이미 호평이 자자했던 이유다.

그동안 당연했던 영웅 서사를 완벽하게 뒤틀고 재해석한 결과다. <토르:라그나로크>에서 볼 수 있는 영웅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지루한 영웅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1. 무엇이 다르길래?

<토르:라그나로크>의 토르가 가진 색다른 매력. 그 핵심은 바로 ‘자신감’에 있다. 이는 현재의 마블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마블 시네마틱 스튜디오’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마블 세계가 창조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은 이제 마블의 세계관을 전부 이해한 채로 영화를 본다.

그것이 바로 이번 작품의 열쇠가 됐다. 토르는 신화적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언행과 소위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시도 때도 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어라? 쟤 갑자기 왜저래?”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이 몇이나 될까. 이미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토르의 모습을 접했던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소 어두운 느낌으로 진행됐던 토르 시리즈와 달리, 그동안 어벤져스의 멤버로서 보여준 개그 감각과 동료들과의 ‘케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당시 보여줬던 유머를 그대로 들고 왔다. 그리고 ‘가장 센 어벤져스’ 헐크를 옆에 붙여놓음으로써 또 하나의 ‘케미’를 완성시켰다.

토르는 극 중 꽤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자신감을 잃지 않고 유머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영웅은 원래 이렇거든”이라며 장난치는 대사를 통해 전형적 영웅 아이덴티티를 오히려 당당히 밝히기도 한다. 또한 헐크와의 검투장 대결 이후, 서로 “내가 이긴 거야”라며 다투는 장면은 마치 어린 아이들끼리 서로 티격태격하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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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장 센 어벤져스일까. (사진=토르 라그라로크 스틸컷)

특히 그들이 탈출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장면에서도 마블의 자신감은 드러난다. 시동을 걸기 위해 생체인식과 음성인식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토르는 자신을 ‘가장 센 어벤져스’, ‘아스가르드의 영웅’ 등으로 말하지만 모두 인식 실패다. 이후 비행기가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제작된 것임을 알고는 ‘장발 양아치’라고 말해 인식에 성공한다. 게다가 ‘가장 센 어벤져스’는 옆에 있던 ‘헐크’ 베너의 인식 암호였다.

캐릭터 아이덴티티와 유머는 모두 기존 마블 영화들을 봤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비행기 장면 역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성향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마블은 10년 동안 구축해온 마블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을 고스란히 이번 작품에 적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유머가 공감대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2. 유머와 재치로 완성된 ‘가디언즈 오브 아스가르드’

하지만 이번 타이틀이 ‘라그나로크’인 만큼 토르에게는 사상 최대의 위기가 닥친다. 작품에는 토르의 숨겨진 누이이자 죽음의 신인 ‘헬라’가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헬라는 '죽음의 신' 답게 아스가르드를 침략해 왕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힘은 막강하다.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드러났 듯,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손쉽게 박살 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한다. 도저히 상대할 마음도 먹지 못한다. 초반 헬라와의 대결에서 토르와 그의 동생 로키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다. 동시에 헬라에 의해 외딴 행성으로 떨어지는 것이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토르와 로키가 도착한 곳은 ‘사카아르’라는 유흥 행성이다.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건물들은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모습을 띈다. 펑키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보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빨간 망토를 입고 다니던 토르마저 “맘에 안 드는 곳이야. 온통 빨갛고 촌스러워”라고 말할 정도다. 행성을 지배하는 ‘그랜드마스터’는 검투 경기를 즐긴다. 경기 흥행을 위해 이방인들을 잡아다 검투 노예로 사용하는 '악덕 업주'다. 토르 역시 노예로 잡혀 긴 머리를 잘리고 검투경기의 아이템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헐크가 등장한다. 게다가 그 장면을 그랜드마스터와 함께 지켜보는 VIP는 함께 행성에 떨어진 로키다. 어디 이 뿐인가. 토르를 잡아다 노예로 바친 사람은 과거 아스가르드의 여성 전사로 활약했던 ‘발키리’다. 상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한 설정이다. 이들은 사카아르 행성에서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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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경기를 관람하는 지배자 '그랜드마스터(좌)'와 VIP(?)관객 '로키(우)'. (사진=토르 라그라로크 스틸컷)

이들은 서로 싸우고, 속이는 우여곡절 끝에 하나로 뭉친다. 사카아르 행성을 탈출해 아스가르드로 향한다. 아스가르드에는 왕국을 난장판으로 만든 헬라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그들의 여정은 비장하기보다는 유쾌한 여행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속은 얼마나 비장했을 지 가늠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들을 연상케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이 대놓고 코드를 유머로 잡은 개그 히어로 그룹이다. 악당을 물리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무시무시한 빌런 앞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토르와 로키, 발키리, 그리고 헐크는 마치 ‘가디언즈 오브 아스가르드’라도 된 것처럼 비슷한 행보를 걷는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무시무시한 헬라가 섬뜩하지 않고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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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아스가르드' 결성! (사진=토르 라그라로크 스틸컷)

재치와 유머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토르는 자신의 3부작 마지막 편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됐다. 앞으로 내년에 개봉될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등 차후 시리즈에서 토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발키리와의 러브라인도 큰 관심이 쏠린다.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아스가르드를 위기에서 구해낸 토르와 동료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이어갈 지 주목해 볼 만 하다. <토르:라그나로크>의 돌풍은 꽤나 이유가 있어 보인다. 현대적인 트렌디함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웰메이드 히어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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