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큐레이션] 세계 클래식계 이슈메이커 '한·중·일 피아니스트 3人 3色'

기사입력 : 2017-11-23 09:06
[웹데일리=조내규 인턴기자] 세계 클래식 시장에 뛰어난 실력을 무기로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동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조성진, 중국의 유자왕(王羽佳), 일본의 츠지이 노부유키(辻井伸行)이다. 한·중·일의 대표 유망주로 각광받는 피아니스트를 차례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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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조성진 공식홈페이지)

◇ 한국 - 조성진 : 세계 최고 콩쿨에서 우승한 22세 젊은 피아니스트

지난 2015년, 세계적인 권위의 쇼팽 콩쿨(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4세의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다. 쇼팽(Frederick Chopin) 작품만을 대상으로 까다롭게 평가하는 쇼팽 콩쿨은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폴리니(Maurizio Pollini), 아르헤리치와(Martha Argerich) 같은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했다. 역대 우승자들의 명성이 뛰어나 화제성만으로는 모든 국제 콩쿨 중에서 최고다.

조성진이 주목받은 이유는 쇼팽 콩쿨에서 한국인의 우승은 불가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대부분이 유럽인이기 때문에 동양인 피아니스트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동양인이 우승하기 위해선 독보적인 기량을 뽐내야 한다. 조성진은 유럽인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놀라운 연주를 보여줬다. 탄탄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심사위원들을 감탄하게 했다. 17명의 심사위원 중 14명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조성진의 우승은 음반 판매로 이어졌다. 쇼팽 콩쿨 실황 음반이 10만장 이상 팔렸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세계 최고 클래식 음반사 DG와 5년간 전속 계약을 맺게 됐다.

젊은 나이에 쇼팽 콩쿨 우승자가 된 조성진은 기교나 쇼맨쉽에 눈길을 두지 않았다. 오직 작품성으로만 승부했다. 첫 스튜디오 앨범의 프로그램으로 쇼팽 발라드 4곡을 선택한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쇼팽의 발라드는 쇼팽의 작품 중에서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The Guardian)’은 이 앨범에 대해 “그의 모든 연주는 쇼가 아닌 그저 음악만을 위한 것”이라고 평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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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조성진 공식홈페이지)

추천 음반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 DG, 2016

쇼팽의 발라드는 많은 피아니스트가 도전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도전과제이다. 복잡하고 극적인 서사 구조 때문에 자칫 잘못 연주했다가는 듣기 싫은 연주가 되기 쉽다. 중국의 유명 피아니스트 랑랑도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했다가 '사상 최악의 쇼팽 연주'라는 불명예스러운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성진은 이 난곡을 수준급으로 연주했다. 특히 2번 연주를 주목해보자. 쇼팽 발라드 2번의 포인트는 두 번의 분위기 전환이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격정적이고 어두운 음악으로 두 번 변한다. 조성진을 이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조성진은 평화로운 분위기의 곡도 아름답게 연주한다. 그의 섬세한 연주 덕분이다. 영국의 음악 잡지 피아니스트(Pianist)는 조성진의 연주가 대가들에 나란히 서도 손색없다고 평가했다. 조성진처럼 여린 음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피아니스트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곡의 후반부에서는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일단 조성진은 건반을 세게 쳐서 소리를 과도하게 부풀리지 않는다. 여러 성부의 음을 균형 있게 연주해 소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격정적인 부분에서도 세고 여린 연주를 교묘하게 오가며 곡의 대비되는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조성진은 다채로운 소리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피아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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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사진=츠지이 노부유키의 앨범 자켓)

◇ 일본 - 츠지이 노부유키 : 시각 장애를 극복한 감동의 피아니스트

악보와 건반을 보지 않고 피아노 연주가 가능할까? 시각 장애인인 츠지이 노부유키는 2009년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장애를 이겨낸 그의 스토리에 많은 사람은 감동을 받았다.

츠지이 노부유키의 우승은 놀라웠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의 우승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는 그가 시작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뛰어나다. 매우 강렬하고 두려움이 없는 연주다. 그는 앞이 보이는 연주자들보다 더 거침없이 연주한다. 거장 피아니스트인 반 클라이번(Van Cliburn)은 그의 연주를 두고 '한마디로 신의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은 츠지이 노부유키가 다재다능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이다. 2009년 콩쿨 우승 이후부터 2017년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그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쇼팽,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라벨(Maurice Ravel) 등 다양한 작품으로 앨범을 발매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자작곡 앨범을 발매했고 2012년에 개봉된 일본영화 <하야부사: 아득한 귀환>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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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이 노부유키 Rachnaninov Piano Concerto No.2(사진=노부유키의 앨범 자켓)
추천 음반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008

노부유키는 자신을 소개하는 팜플렛에 "음악 앞에서는 어떤 장벽도 없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그는 선이 굵은 연주로 광활한 세계를 그려낸다. 2008년에 발매한 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앨범은 명연주로 평가받는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역동적인 구성으로 오늘날까지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이다.

노부유키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천천히 연주했다. 자의적으로 박자를 당기거나 늘리지 않고 한음 한음 담담히 청중들에게 전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부분은 소리를 부풀려서 피아노의 울림을 키운다.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압도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연주는 다소 투박하게 들릴지 모르나 노부유키는 큰 울림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임이 분명하다. 그의 유튜브 연주 영상 댓글에는 유독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가 많다. 세상을 소리로 경험한 노부유키의 음악적 감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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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유자왕(사진=유자왕 공식 홈페이지)

◇ 중국 - 유자왕 : 유튜브로 유명해진 피아니스트

유자왕은 유튜브로 유명해진 피아니스트다. 콩쿨 입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피아니스트의 일반적인 행보와 비교해 파격적인 셈이다. 2008년, 그녀가 베르비에 페스티벌(Verbier Festival)에서 연주한 영상이 유튜브에 퍼졌다. 유튜브 채널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 이 동영상은 3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유자왕의 연주 영상에 주목한 이유는 그녀가 초고난도의 곡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치프라(Georges Cziffra)가 편곡한 <왕벌의 비행>을 별 어려움 없이 연주한 것이다. 악명높은 난곡으로 유명한 이 곡을 말이다. 사람들은 가녀리고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성이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녀의 화려한 연주 의상도 숱한 화제를 낳았다. 의상에 노출이 많아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진정성 없는 연주자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다. 연주 테크닉과 쇼맨십만 전면에 내세운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자왕은 비판을 계기로, 더욱 진정성 있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음악성과 기교의 균형을 잡아줄 작품을 선택해 앨범을 발매했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작품들이었다. 그 결과 대중들은 그녀가 단순 기교 이상의 음악 역량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2011년에는 권위 있는 에코 어워드(Echo Awards)의 클래식 부문 '올해의 영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그녀가 진정성 있는 음악가로 인정받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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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왕 Ravel (사진=유자왕의 앨범 자켓)

추천 음반 : Ravel, DG, 2015

그녀의 앨범 자켓명 '라벨'은 색채 표현을 중요시한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를 뜻한다. 라벨 음악의 핵심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악기의 음색과 화음의 조합으로 색채를 표현하는 점이다. 유자왕은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깨끗한 음색과 정제된 소리로 연주했다. 타건에 힘을 다소 빼서 수많은 음이 맑은 소리로 들리게 했다. 유자왕은 라벨이 악보에 쏟아놓은 화음들을 균일하게 정리했고 라벨이 의도한 음향이 화려하게 부각됐다.

그녀가 연주한 2악장을 주목해보자. 라벨 피아노 협주곡의 2악장은 분위기가 편안하고 서정적이어서 뉴에이지나 영화 OST를 연상하게 한다. 그녀는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듯 유려하게 연주한다. 인위적으로 특정 음을 강조하거나 박자를 바꾸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부드럽게 따라갈 뿐이다.

9년 전 유튜브 영상에서 거침없이 피아노를 내리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피아노 곡예로 쇼맨십을 내세운다고 비평을 받았다. 유자왕은 기교를 내려두고 라벨 협주곡의 복잡한 음향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쉽게 풀어서 들려줄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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