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팬을 위한 얕은 지식사전] 제3화 : 거인들의 거인, NBA 블록왕 '매뉴트 볼'

기사입력 : 2018-01-3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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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이민우 인턴기자] ◇ 수단 공화국의 딩가족 청년, 매뉴트 볼(Manute 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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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BA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공식 홈페이지


'매뉴트 볼'은 1980-90년대 NBA에서 활약한 센터 포지션의 선수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워싱턴 불리츠(현 워싱턴 위저즈), 마이애미 히트에서 뛰었다. 매뉴트 볼은 많은 농구 천재들이 결집한 NBA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매뉴트 볼이 가진 재능이 농구에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이질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NBA가 다른 리그들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우월한 신체적 차이, 그중에서도 ‘신장’이다.

NBA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다른 농구 리그의 선수들보다 높은 편이다. 따라서 NBA에서 뛰기 위해서는 이 ‘신장’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필수요건’에 가깝다. 아이제이아 토마스(177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앨런 아이버슨(183cm 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처럼 일반인과 비슷한 신장을 가진 선수들도 있지만, 이들은 극소수이고 상대적으로 신체적 불리함이 덜 부각되는 가드포지션의 선수였다. 가드와 달리 소위 ‘빅맨’이라고 불리는 센터, 파워포워드의 선수들은 ‘신장’우위가 상당히 중요하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신장’의 우위가 경기력으로 직결되는 일이 많다. 그 때문에 단순히 키만 큰 선수라도 NBA 구단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몇 가지 기술만 사용할 줄 알아도 신장의 우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뉴트 볼은 이 ‘신장’이라는 재능을 압도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선수였다. 매뉴트 볼은 아프리카 수단(현재는 남수단과 분리)의 장신부족 딩카족 출신으로 키가 231cm에 달했다. 매뉴트 볼의 키는 루마니아 출신의 게오르게 뮤레산과 함께 NBA 역대 최장신이다.

매뉴트 볼은 수단에서도 가끔 직업 농구 선수로 뛰었지만,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온 뒤였다.


매뉴트 볼은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에 샌디에고 클리퍼스(현 LA 클리퍼스)에 지명됐다. 하지만 NBA의 드래프트 규정에서 그의 나이 문제로 샌디에코 클리퍼스의 드래프트 지명이 취소됐다. 당시 NBA 규정은 외국 선수의 경우 만 22세 이상만 지명이 가능했다. 때문에 매뉴트 볼은 미국에서 첫 출발을 대학 농구로 시작해야 했다. 매뉴트 볼의 압도적인 신장은 대학 감독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갓 넘어왔던 매뉴트 볼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농구 실력도 그리 특출나지 못했다. 결국 매뉴트 볼은 몇몇 대학 농구팀을 전전하게 된다.

갖은 고생을 겪던 매뉴트 볼은 1984년 마침내 대학리그 디비전 II의 브릭포드 대학교에 입단해 미국 농구 무대에서 데뷔한다. 매뉴트 볼은 여기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그간의 설움을 날려버린다. 그는 브릭포드 대학교에서 1년간 활약하며 게임당 20득점 이상, 10리바운드 이상, 7블록 이상을 밥 먹듯 기록했다. 대학리그 디비전 2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활약이었다. 디비전2를 평정한 매뉴트 볼은 1985년 다시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마침내 2라운드에서 워싱턴 불리츠의 지명을 받는 데 성공한다.

◇ 거인들의 거인, 블록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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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BA 공식 홈페이지


매뉴트 볼은 NBA에 첫 시즌부터 자신의 긴 신장은 빛을 발했다. 메뉴트 볼은 신장이 긴 만큼 팔다리도 매우 길었다. 특히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윙스펜(양팔을 직각으로 넓게 벌린 길이)’이 매우 넓었다. 매뉴트 볼의 윙스펜은 250cm가 넘을 정도였고, 상대 선수들은 이런 매뉴트 볼 앞에서 슛을 마음껏 하기 어려웠다.

매뉴트 볼은 무자비한 블록 실력을 보여주면서 첫 시즌에 NBA All Defensive-Team Second에 들었다. 매뉴트 볼은 이 시즌에 리그 80경기에 출전해 400개에 가까운 블록을 기록했다. 경기당 5개에 가까운 블록을 꼬박꼬박 기록한 셈이다.

매뉴트 볼은 뛰어난의 블록 능력을 바탕으로 좋은 수비력을 뽐냈으나 이내 점차 파훼 되기 시작했다. 매뉴트 볼은 거대한 신장에 비해 체중은 매우 적었다. 때문에 상대 팀 선수가 몸싸움을 통해 밀고 들어오면 대응하기가 힘든 단점이 있었다.

또한 수비력에 비해 지나치게 약한 공격력이 발목을 잡았다. 기본적인 골밑 플레이나 훅 슛 같은 빅맨, 센터로써 가져야 할 공격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쓰임새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 불리츠 시절 이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3점 슛을 장착하며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듯했으나, 뚜렷한 장점으로 발현되지는 못했다.

매뉴트 볼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이후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히트를 거치면서 점차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단기 계약을 맺으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매뉴트 볼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다시 활약하는 듯했으나 이내 계약해지를 당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매뉴트 볼은 10년 정도 만에 NBA 커리어를 마감했으나 나름대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데뷔 시즌 기록했던 블록 기록은 신인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NBA에 역사에서도 단일 시즌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블록 기록이었다. 또한, 데뷔시즌(1986년)과 1989년에 블록왕을 차지했고 평균 득점보다 평균 블록을 높게 기록하는 등 ‘블록의 왕’이라고 불릴 만한 족적을 남겼다.

◇ 수단을 사랑한 딩가족 청년 고향에 묻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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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루올 뎅 페이스북 페이지

매뉴트 볼의 유별난 고향 사랑은 유별났던 그의 키만큼 유명했다.

수단은 당시 이슬람 정부의 북부지역과 원주민, 토착·기독 신앙의 남부지역이 이슬람 정부의 종교 탄압으로 내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남부지역의 딩가족 출신이었던 매뉴트 볼은 자신의 연봉을 아랑곳 하지 않고 고향과 수단의 평화를 위해 쏟아부었다. 이슬람교로 개종을 강요하는 수단 정부에 비자 발급이 거부되고 억류될 뻔 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오히려 수단 난민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연봉 대부분을 기부하는 선행을 펼쳤다.

자신의 몸을 수단을 위해 바친 매뉴트 볼은 2000년대 들어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라는 희소 질환을 얻으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 질환은 약 100만 명에 한 명 꼴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을 얻은 매뉴트 볼은 병마와 싸움을 시작했으나 2010년 6월 19일 47세의 일기로 사망하고 만다. 사후 매뉴트 볼의 유해는 그의 고향이었던 남수단으로 옮겨져 매장됐다.

매뉴트 볼은 NBA가 외국에 거의 무지하던 시기, 나이지리아 출신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아프리카 농구의 실력을 NBA에 알린 장본인이다. 또한, 수단 출신 농구 선수 루올 뎅(현국적, 잉글랜드)을 농구의 길로 인도하는 등,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출신 농구선수들의 저변 확대에도 크게 기여를 했다. 대내외적으로 매누트 볼을 존경한다고 알렸던 루올 뎅은 2015년 매뉴트 볼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남수단에 매뉴트 볼의 이름을 딴 농구코트를 세워 매뉴트 볼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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