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청년 독고탁, 그가 던지는 야구공은 '마구'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였다

③ 다시 보는 이상무 화백의 작품 세계

기사입력 : 2018-02-10 02:57
[웹데일리=이선기 기자/김찬영 기자] 1980년대 한국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상무 화백의 야구만화 <달려라 꼴찌>를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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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고탁컴퍼니)

<달려라 꼴찌>는 만화캐릭터 독고탁을 한국만화의 정점에 오르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독고탁은 작품 속에서 그만의 무기인 '마구(魔球)'를 선보이며 전국에 야구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맞물려 한국만화와 프로야구의 전성기를 이끌다시피 했다.

독고탁을 창조해 낸 이상무 화백은 이 작품으로 인기의 절정에 올라섰다. 이렇다 할 놀 거리가 없던 그 시절, 비좁고 눅눅했던 만화방은 독고탁과 함께 마운드에 오르는 순수한 소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온 동네 공터에서는 독고탁의 마구를 흉내내며 공놀이에 한창이던 소년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독고탁은 당시 유행하던 요정같은 외모의 미남·미녀 주인공을 앞세운 만화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보잘 것 없는 외모와 복잡한 가정사로 가득 찬 청년 독고탁의 이야기는 수많은 당시 애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로를 건넸다. 그가 만화에서 보여줬던 진실함과 불굴의 의지는 암울했던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청년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했던 시절, 그가 던지는 야구공은 마구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였다.

'독고탁의 아버지' 만화가 故 이상무 화백이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상무 화백은 일생을 만화와 함께했다.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도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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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고탁컴퍼니)

그는 194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 칸 만화를 연재하면서 처음 만화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서울로 상경해 박기정, 박기준 화백의 문하에서 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66년 월간 잡지 ‘여학생’에 연재되던 <노미호와 주리혜>를 스승인 박기준 화백으로부터 이어받아 정식 만화가로 데뷔했다.

그가 창조해 낸 독보적 캐릭터 '독고탁'이 처음 등장했던 만화는 1971년 작 <주근깨>였다. 반항아 기질을 머금은 까까머리 소년 독고탁은 선남선녀가 장악하던 당시 한국만화의 공식을 깨뜨린 주인공이었다. 현실적이면서도 신선한 캐릭터가 제대로 통했다. 이상무 화백은 이 만화로 한국 만화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독고탁 열풍의 시작이었다.

1970-80년대 이상무 화백은 잡지만화를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주로 스포츠 장르의 작품을 많이 연재했다. 1976년부터 ‘소년중앙’에 야구만화인 <우정의 마운드>를 연재해 스포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후속작 <비둘기 합창>에서는 가족 간의 이야기를 통해 좀 더 감성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 1978년부터 ‘어깨동무’에 연재한 <울지 않는 소년>은 축구만화, 1981년부터 연재된 <아홉 개의 빨간 모자>는 야구만화다. 1982년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한 <다시 찾은 마운드>는 만화영화로도 제작됐다.


1980년대 성인만화 잡지 출현 이후에는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만화광장’에 연재한 <포장마차>가 있다. 1990년대 초부터는 ‘스포츠조선’에서 <싱글로 가는길>을 연재했다. 그 이후에는 <불타는 그린>, <운명의 라스트 홀> 등 전에는 다루지 않았던 골프만화들도 연재했다.

스포츠와 사랑, 가족, 복수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뤘지만, 이상무 화백의 작품 세계의 핵심은 바로 '순수한 열정'과 '불굴의 의지'였다. 만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담아냈던 이상무 화백의 순수했던 작품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1. <노미호와 주리혜> (1966, 월간 ‘여학생’) : 한국식 <로미오와 줄리엣>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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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고탁컴퍼니)

에피소드 형식으로 된 만화 <노미호와 주리혜>는 두 주인공의 두근거리면서도 풋풋한 학창시절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언제나 검은색 학교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 까까머리 ‘노미호’와 단발머리의 ‘주리혜’는 이웃에 사는 단짝이다. 둘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이지만, 항상 그것을 숨기며 친구 사이로만 지낸다.

'여학생' 잡지에 연재한 이상무 화백의 데뷔작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 야구, 민방공훈련, 사랑 등 당시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들을 이상무 화백 특유의 방식으로 정감 있게 표현해냈다. <노미호와 주리혜>는 많은 청소년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이상무 화백의 이름을 알리는 첫 번째 계기가 됐다.

2. <비둘기 합창>(1978, 월간 ‘소년중앙’) : ‘이상무’식 감동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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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고탁컴퍼니)

만화 <비둘기 합창>은 이상무 화백 특유의 감동 화법이 한껏 표현된 작품이다. 가족애를 중시했던 이상무 화백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가족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재벌가 사장의 차를 운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큰 누나, 검사를 목표로 공부 중인 큰 형, 말수가 적지만 싸움을 잘하는 작은 형, 소설가가 꿈인 중학교 3학년 작은 누나, 철없는 막내 독고탁과 귀여운 반려견 ‘누렁이’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탁이네 가족을 통해 현실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이상무 화백은 <비둘기 합창>에서 가정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와 누렁이 포함 6남매의 다사다난한 일상을 그려내며 고된 사회에 지쳐있던 당시 독자들의 마음을 녹였다. 전작들과 다른 신선한 소재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그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됐던 작품이다.

3. <울지 않는 소년>(1979, 월간 ‘어깨동무’) : 독고탁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축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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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울지 않는 소년'의 복간본 (사진=독고탁컴퍼니)

만화 <울지 않는 소년>은 유달리 스포츠를 좋아했던 이상무 화백의 열정이 담긴 스포츠만화 중 하나다.

한국 축구의 혁신을 주장했지만 세상의 외면을 받은 축구 감독 '독고룡'은 산속에 은거하며 아들 독고탁을 뛰어난 축구선수로 키운다. 독고룡을 찾아간 축구 협회 감독 ‘김석원’은 그의 임종을 곁에서 지킨 후 독고탁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온다. 고등학교 축구 시합에 나간 독고탁은 뛰어난 실력으로 상대편을 압도하고, 축구 협회장의 눈에 띄어 대표팀에 입단한다. 그 사이 탁이는 그리웠던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항상 말을 걸지 못한 채 주위를 맴돈다. 어머니 곁에 자신의 형인 '독고준'이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한 탁이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인다. 그토록 원하던 어머니의 사랑을 뒤로한 채, 사라진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독고탁은 축구장으로 나선다.

이상무 화백이 자주 표현했던 소재인 ‘복잡한 가정사’와 축구라는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다. 주인공의 외적 성장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다른 스포츠 만화와 달리, 독고탁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난 모든 걸 가질 테야. 엄마의 사랑도 아빠의 영광도. 그 때까지는 난 결코 울지 않아" 라고 독백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독고탁 정신’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대목으로 화자된다.

4. <달려라 꼴찌>(1982, 월간 ‘소년중앙’) : 스포츠 만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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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달려라 꼴찌'의 복간본 (사진=독고탁컴퍼니)

1980년대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상무 화백의 대표작이다. 당시 애독자들 사이에서 '마구(魔球)'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작품이다.

야구계 최고의 강 타자였으나 경기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독고룡의 아들 독고탁. 그는 동생과 함께 상경해 우수고등학교 야구부에 입단한다. 가난한 생활, 작은 체구 등 암울한 환경에도 독고탁은 빠른 발과 강한 어깨, 꾸준한 노력으로 단숨에 팀의 에이스로 등극한다. 한편, 미완성 마구 '드라이브 볼'을 던져 독고룡을 사망하게 한 투수 '조규식'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탁이에게 마구를 가르치게 되고, 탁이가 던지는 완성된 '드라이브 볼'을 보며 조금씩 죄책감에서 해방된다. 독고탁은 드라이브 볼로 국내 야구계의 유망주로 떠오르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마구를 봉인한다. 하지만 독고탁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규식의 아들 '조봉구'의 노력 끝에 독고탁은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최고의 마구를 사용해 일본 고교야구 선발팀에게 승리한다.

이상무 화백은 <달려라 꼴찌>로 인기의 절정에 섰다. 본래 1부에서 끝날 예정이던 스토리를 잡지사의 요청으로 2부까지 연장해서 그렸을 정도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 표현은 물론, 다양한 마구를 등장시켜 스포츠의 재미까지 더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소홀했던 인종 차별과 같은 문제들을 만화로 표현해 지금까지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달려라 꼴찌>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한국만화걸작선’ 사업을 통해 2014년 복간됐다. 복간 당시 이상무 화백은 “조금 더 유쾌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새로운 야구만화를 그려보고자 시작한 작품이다”라고 말하며 작품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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