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8 15:10  |  

기념비 뒤편의 사람들, 독립운동가 김원벽

[웹데일리=손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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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일어난 3.1 운동은 일제 치하에서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운동의 핵심 세력 하나는 다름 아닌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사실. 3.1절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 우리 시대, 역사 뒤편에서 대한의 독립을 부르짖던 청춘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민족사 최대의 독립운동
밥벌이에 지쳐 역사 공부와 떨어진 오래된 이들은 명칭 때문에 3.1운동이 3 1 하루 동안 일어났다고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운동은 3 1일을 기점으로 한반도 전역에 들불처럼 번진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3.1 운동에 대해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알려진 이상으로 3.1 운동이 널리 퍼져나갔으며, 수천여 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라고 보도했으며, AP통신은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천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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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이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원벽을 2018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원벽, 학생 신분으로 3.1 운동을 준비하다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김원벽은 1914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와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는 박희도(朴熙道),이갑성(李甲成) 등과 모임을 가지면서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19 2 25, 학생 대표들과 서울 중구의 정동교회 이필주(李弼柱) 목사의 사무실에 모여 만세운동의 추진 계획을 논의하였고, 결과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은 2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로 결의하였다.

1 만세운동이 일어난 3 1 나흘 뒤인 3 5, 오전 9 김원벽은 인력거를 타고조선독립이라 깃발을 흔들며 남대문 ( 서울역)으로 나아갔다. 김원벽의 만세 소리를 듣고 모여든 군중들은 같이대한 독립 만세 외치며 덕수궁 대한문, 종로 보신각으로 나아갔다. 김원벽은 이후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혀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62, 정부는 김원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3.1운동 99주년을 맞이하여 김원벽을 ‘2018 3월의 독립운동가 선정하고 전시회를 개최한다. 자세한 전시개요는 아래와 같다.

전시 개요

기간 : 2018 3 1~3 31( 달간)

장소 :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5·6 통로)

내용 : 김원벽 사진 9



WD매거진팀 story212@web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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