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7 21:20  |  영화

[영화 받아적기] ‘레디 플레이어 원', 관람하지 말고 플레이하라

3월 20일 CGV용산 아이맥스 언론배급시사회 감상평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웹데일리=이선기 기자] 콧등을 짓누르는 아이맥스 안경을 벗고 현실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속 가상현실 세계 ‘오아시스'가 실존한다면 당장이라도 결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초의 ‘가상현실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은 허풍이 아니었다. 화제가 된 수많은 콘텐츠의 의기투합은 잡탕밥으로 전락할 줄 알았으나 대중문화의 어벤져스를 탄생시켰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노년으로 접어들어가던 자신의 역사를 다시금 새로 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전작이 저널리즘의 딜레마를 다룬 <더 포스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장르적 균형에 새삼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20일 CGV용산에서 열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아이맥스 언론배급시사회를 다녀왔다.

익히 알다시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작품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OASIS)'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가상현실을 고찰한다기보다는 가상현실을 두른 게임성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극의 70% 가량이 가상현실 안에서 진행되는 만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전개될 법한 윤리적이나 기술적 갈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기술의 미래를 고민하는 테크노피아적 고찰은 찾기 힘들다. 그보다는 영화와 게임 등 익숙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한데 모아 짚어보는 대중문화 역사서에 가깝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작품의 중심은 당연히 가상현실 세계다. 2045년, 천재 프로그래머 제임스 할리데이에 의해 창시된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는 이름 그대로 희망의 아이콘이다. 암울하게 표현된 현실과 달리 오아시스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모습으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누구의 상상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세계다.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낙이자 하나의 희망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핵심 소재는 바로 ‘이스터에그'다. 창시자 할리데이는 자신이 개발한 오아시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자신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미션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바로 게임 속 이스터에그를 찾는 것이다. 80년대 대중문화를 사랑했던 할리데이와 관련된 단서가 그것이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구현된 가상현실이 혁신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이래 봐왔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가상현실 기술은 VR 고글을 쓰고 웨어러블 기기들을 착용한 채 허공을 휘젓는 현재의 기술을 그대로 차용했다. 논외로, 지난해 개봉한 SF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속 가상현실 마켓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픽 요소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기 충분한 현재의 기술 진보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 속 세상은 다분히 인공적이다. 가상현실 속 세계관은 현대 게임에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수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2045년인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하지만 조금 뒤집어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가상현실보다는 가상현실 ‘게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기술적인 진보보다는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게임적 흥미를 극대화했다. 스필버그는 게임이라는 개념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실성을 의도적으로 낮춰버렸다. 사실, 시각적 쾌감은 가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개념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실성이 배제됐을 뿐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쾌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스필버그다운 발상이다. 덕분에 자칫 잡탕밥이 될 뻔했던 수많은 대중문화 요소는 게임이라는 조명 아래 빛을 발할 수 있었다.

80년대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다채로운 대중문화의 저작권들은 영화의 몰입을 오히려 끌어당기는 요소다. 게임 속 중심 소재가 이스터에그인 만큼 각종 영화와 게임 속 캐릭터도 이스터에그를 찾는 전개와 방향을 같이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중문화 요소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의 주인공 웨이드가 이스터에그를 찾는 동안, 관객들도 영화 곳곳에 숨겨진 오마주와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와 게임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맞춤형 영화나 다름없다.

조금은 밋밋해 보였던 가상현실이라는 공간은 여기서 되려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게임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인식하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가 하나의 실제 게임으로 인식되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각종 캐릭터로 무장한 코스튬이나, 코인을 가지고 아이템을 구매하는 장면 등을 보면 자신이 영화를 보는 것인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신은 웅장하고 무섭다기보다는 마치 실제 게임 속 공성전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가상현실 속 1차원으로 진행되다 보니, 상당히 혁신적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이다. 여기에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한 데 모아 보는 재미까지 더해지니 게임성 측면에서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반면 상대적으로 삭막하게 표현된 현실 세계는 가상현실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잡혀 있다.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배제한 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가상현실이라는 환상적 공간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충실히 설명하는 데 만족한다. ​주인공 웨이드가 어느 하나 기댈 곳도 없는 위태로운 빈민촌 건물을 꾸역꾸역 오르내리는 이유다.

center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매력은 결국 게임의 본질적인 기능을 온전히 즐기는 데 최적화된 작품으로 귀결된다. 마치 영화를 봤다기보다는 두 시간의 플레이타임을 가진 가상현실 게임을 즐긴 것만 같다. 또한 동시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중문화에 바치는 헌정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중들에게도 역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한 가지다. 러닝타임 내내 가상과 현실 사이에 선을 그어왔던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두시간 동안 가상의 공간을 강조한 영화는 극 말미에 와서야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라는 메시지를 툭 던져놓는다. 하지만 그 진동은 거대하다. 진정한 현실은 고글 없이 볼 수 있고, 웨어러블 기기 없이 만질 수 있는 지금 이 곳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번 작품은 유달리 ‘N차 관람’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요소를 경험해보기 위해 게임을 여러번 플레이하는 것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해 작품을 여러 번 ‘플레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news@webdaily.co.kr

<저작권자 © 웹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상반기 암호화폐 시장을 예측한 신간 도서 ‘화제’
☞ [AD] 로또 용지 "틀렸다고 버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