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9 16:17  |  웹툰·만화

분단된 ‘웹툰공화국’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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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웹데일리=이선기 기자] 최근까지 웹툰 산업의 기세는 무서웠다. 모바일 기반 ‘스낵문화’를 등에 업고 콘텐츠산업을 이끌다시피 성장해왔다. IP(지적재산권) 비즈니스는 상대적으로 부실한 수익모델을 보완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적은 자본으로도 제작이 가능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파일럿 콘텐츠’로 주목을 받았다. 웹툰 산업의 영토 확장은 파죽지세였다. ‘웹툰공화국’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기세는 새로운 적을 만나면서 크게 꺾이고 말았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구독자들의 발길은 어느새 한산해졌고, 투자 유치 금액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반면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타난 적은 힘을 잃고 쓰러져가는 산업의 뿌리까지 뽑을 기세다. 그들은 달콤한 유혹으로 구독자들을 포섭해 나가며 웹툰 산업을 절반으로 쪼개버렸다.

◇ 웹툰 시장을 둘로 나눠버린 ‘해적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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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불법으로 도용하는 해적 B사이트의 모습. 장르와 플랫폼을 구분하지 않고 작품을 모두 복제해 한 곳에서 불법 게시하고 있다. (사진=B사이트 캡처)

그들의 정체는 웹툰을 불법으로 퍼다 나르는 ‘해적 사이트’다. 거의 모든 웹툰 플랫폼의 작품들을 무단으로 복제해 불법 사이트에 게시하며 구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웹툰가이드에 따르면 해적 사이트가 탈취한 실 피해액의 규모는 지난해에만 2,000억 원을 넘는다. 웹툰 시장 전체 규모의 절반에 가깝다. 웹툰인사이트는 지난해 해적 사이트의 불법 도용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을 1,900억 원으로 집계했다. 페이지 뷰(PV)는 약 100억 회다. 이는 전체 웹툰 플랫폼의 조회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로, 일반 웹툰 플랫폼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는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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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규모가 큰 불법 도용 B사이트는 지난해에만 1,600억 원이 넘는 실 피해를 냈다. (사진=웹툰인사이트)

이겨낼 도리가 없다. 정통으로 타격을 받은 유료 웹툰 플랫폼을 비롯해 정부와 공공기관, 작가들까지 나서 ‘해적 소탕’에 나서고 있지만 번번히 실패다. 해적 사이트들은 타격을 입기는 커녕 마치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 해외 ISP업체 타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이들 해적사이트는 해외 ISP업체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방법으로 자생하고 있다. 해외에 서버를 둘 경우 국내에서 적발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한 것이다. 간신히 적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뿐이다. 서버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명확하지 않은 저작권 관련 규정도 이들의 세력 확장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저작권 분쟁의 경우 경찰이 직접 수사에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바라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더구나 그들은 처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100만 원 내외의 벌금을 내고 서버를 다시 개설하면 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막대한 수익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제일 큰 문제점은 서버를 다른 국가로 옮기면 관련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적 사이트의 운영자를 찾아 적발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반면 사이트를 다른 서버로 옮기는 데 드는 시간은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 공화국 vs 해적, 끝 없는 '게릴라전’

웹툰 플랫폼 사와 각종 관련기관, 피해 작가 등으로 구성된 공화국 진영은 끊임없이 해적 진영을 타격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의미 없는 소모전만 계속될 뿐 그들의 본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는 해적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 해외 ISP업체들을 찾아내 직접 철퇴를 가했다. 지난해 레진코믹스가 삭제한 해적 사이트만 무려 33개다. 더불어 해외 포털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 자사 작품 게시물도 무려 434만 건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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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레진코믹스가 삭제 조치한 웹툰 불법게시물 현황(사진=레진코믹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진코믹스의 트래픽은 오히려 지속적인 감소 추세다. 지난 3월에는 지난해 12월 대비 트래픽이 30% 이상 감소했다. 다른 플랫폼들도 마찬가지다. 해적 사이트의 트래픽이 비약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저작권의 직접적인 주체인 작가들도 힘을 모아 해적 사이트 소탕에 나서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부 작가들은 대응조직을 구성해 직접 민사소송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대규모로 소송을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작가들로 구성된 한국만화가협회 역시 해적 사이트 고발을 위해 증거자료를 수집했지만 이후 감감 무소식이다.

정부기관도 칼을 빼들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일 방송통신위원회와 경찰청과 협력해 불법 해외사이트를 집중 단속하고 저작권 보호 캠페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피해가 막심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저작권 침해 대응 특별 전담팀을 꾸려 불법 복제물의 온라인 유통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불과 이틀 만에 성과가 나오는 듯했다. 수많은 해적 사이트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세력인 B사이트가 정부 발표 이틀 만에 차단된 것이다. 하지만 B사이트는 이번에도 다시 되살아났다. B사이트는 차단된 지 하루 만에 다시 정상화된 채로 서비스되고 있다.

◇ 평화 되찾아올 구세주는 결국 ‘구독자’

아마도 이 치열한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산업 자체가 여전히 초기단계인 만큼 체계적인 해결 방안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재정비를 하고 있지만 당장 해결책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못할 수도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구독자의 관심’이다.

구독자 없는 작가는 존재할 수 없듯이, 작가 없는 구독자 역시 존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올바른 수익이 돌아가도록 정상적인 방법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불법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으면 해적 사이트는 그 무엇보다 빠르게 생명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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