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4 00:04  |  정치

향년 92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DJ‧YS‧JP 3김 시대 종언

영결식 오는 27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진행해 오전 9시 발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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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2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은 3김 시대를 종언했다.
[웹데일리=김시연 기자] 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김 전 총리 유족 및 관계자들은 23일 오전 8시 15분경 김 전 총리가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이들에 의하면 김 전 총리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며 영결식은 오는 27일 오전 8시 아산병원에서 진행해 오전 9시 발인할 예정이다.

장지는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인인 고(故) 박영옥 여사를 모신 충남 부여 가족묘원에 마련된다.

1926년 충남 부여 출생인 김 전 총리는 공주중학교‧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지난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쿠테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에 등장했다. 같은 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창설한 김 전 총리는 초대부장에 취임해 2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창당을 주도해 같은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제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던 지난 1962년 일본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열어 최종 합의를 이끄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본측이 한국에 제공할 청구권 액수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 등 보상금 총액을 규정한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공개되자 굴욕외교라며 이를 비판한 6.3 사태가 발생해 외유길을 걷기도 했다.

지난 1971년 민주당 부총재를 지냈고 같은 해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간 국무총리도 맡았던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되면서 재산환수, 정치활동 금지 등 수난을 겪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984년 미국으로 출국해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해 이듬해인 1987년 정계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후 같은 해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지역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등 정계에 복귀하게 된다.

1992년 대선 당시에는 김영삼(YS) 대통령 후보를 지원고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2년 후 1997년 대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대권에 뛰어들었으나 선거 막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켜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동시에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DJ 정부 수립후 두 번째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 전 총리는 지난 2001년 내각제 개헌 파동과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 파기로 인해 DJ와 결별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등 참패를 겪었고 본인 조차 10선 도전에 실패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별세한 김 전 국무총리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가장 먼저 찾았다. 장 의원은 과거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시절 김 전 총리의 대변인을 지낸 최측근이다.

정 의원은 “김 전 총리야말로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헌한 유일한 정치 지도자였다”고 평했다.

news@web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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