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3 12:15  |  아트·컬처

[인터뷰] '103세 노장' 김병기 화백 "나만의 포스트모던을 하고 싶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여기, 지금' 전시 개최

[웹데일리=이소영]
만 103세 되는 생일을 맞아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를 오픈한 김병기 화백을 만났다. 그에게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100세 생일을 맞은 전시에서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 전시에서 그 약속이 지켜졌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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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화백 / 사진=가나아트센터
Q. 생일과 함께 새로운 전시를 오픈 하는 소감은 어떠한지?

감정이 복합적이다. 우월적인 것과 약함이 교차 상태인 것이 지금 내 심리다. 전시로 생일을 맞으니 흐뭇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렇게 나이 많은 미술가의 전시란 역사상 없는 일이다. 내가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하늘에 감사하다. 여러분과 한국에 감사 드린다. 이런 이야기는 서론이며,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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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나아트센터
Q. 이번 전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신작과 대표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전시명 '여기, 지금'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현재의 시간을 뜻한다. 미술가는 캔버스를 보며 지금을 경험하게 되며, 이 공간을 채워 넣고 싶은 무아경(無我境)에 빠지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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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사진=가나아트센터
Q. 20세기, 21세기를 지나온 노장으로서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추상과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이고 수공업적인 상태에서 선에 도달했다. 추상을 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현대는 추상의 시대다. 오브제를 뛰어 넘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추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그냥 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20세기는 추상을 넘나들었고, 21세기는 그 후의 시기가 아닌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도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술뿐 아니라 철학·사회·건축·종교에까지 해당되는 사조다.

다만 나는 나만의 포스트모던을 하고 싶다. '1+1=2'는 절충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해진 답을 넘어 선도 되고 0도 되는 노자의 세계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동양 선불교와 실존주의는 비슷한 점이 있다. 시간의 단면이라는 점에서 실존주의도 노자와 비슷하다. 내가 그린 그림도 분석해보면 '선'이 '면'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선'이다. 점이 연결되면 선이 되고, 선이 연결되면 면이 된다. 면이 입체를 만들고, 색채를 첨가하면 회화의 조건이 완성된다.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 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젊다. 나는 추상화가처럼 그림을 그렸지만 체질적으로 형상성을 떠날 수 없다. 형상과 비형상은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다. 회화는 근본적으로 형상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회화는 결국 현실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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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화백 / 사진=가나아트센터
Q. 현대미술을 옹호하기 보다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있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 대표 작가의 예술적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목수들이 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절반은 내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작가는 돈 많은 과부에게 장가들어 큰 아파트를 차지하고, 캔버스 프레임을 목수들에게 지시해서 만들었다. 그의 말에 따라 목수들이 오렌지를 뿌리고 직선을 그렸던 것이 현대미술로 칭송 받고 있는 것이 사실 못마땅하다.

세계적으로 전람회를 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 바스키아, 쿠사마 야요이, 데미안 허스트도 마찬가지다. 데미안 허스트는 유리 탱크에 죽은 상어를 넣었는데, 작가가 딱히 한 일도 없이 그저 지휘한 것이 유명한 작품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현대미술의 허위가 아닌가? 나는 아직도 직접 그림을 그리는 늙은 작가로서 이런 작품을 보면 현대미술의 허위성을 느낀다. 그들의 그림 값도 어찌나 비싼지 부정적 마음도 든다. 나는 100살이 넘도록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현대미술의 허위성에 반발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요즘 현대미술은 사실화에서 추상화, 오브제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뒤샹의 '샘'인데, 변기에 사인만 한 것이 그의 대표작이다. 현대미술이 공장 미술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이 아니다. 한글이라는 세계에서 제일 수준 높은 언어, 초고속 인터넷의 편리함으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는 세계 최고 문화의 선진국이다.

다른 나라에도 괜찮은 작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 작가 실력도 최고다. 우리나라 작가 중 이중섭은 상당히 훌륭한 작가인데 일찍 죽어 아쉽다.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등 나와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은 세계 수준에 비견해보았을 때 자신만만하게 내세울 수 있는 대단한 작가들이다. 기자, 큐레이터 여러분이 한국 작품을 세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자신 있게 소개해주시라.

Q.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아까 현대미술을 비판했는데, 때로는 그 허위성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바스키아는 거리에 낙서하던 친구인데 갑자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뒤샹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사실 지금 남은 것은 변기 밖에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는 펠트 천을 남겼다. 끝났다. 요셉 보이스는 피아노 위에 보자기를 덮어놓고 세계 문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요셉 보이스는 다빈치처럼 노트에 많은 메모를 남겼다. 그가 남긴 것은 정체불명의 노트와 제스처다. 세계대전에서 포로가 된 순간을 과장해 이야기했던 것도 흥미롭다. 일종의 개념미술인데, 개념미술로부터 허위가 시작된다. 어쨌거나 지금 남은 것은 변기와 TV 박스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원초적 경지이며 어떤 의미에서 영원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린다는 것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추상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그린다. 아무리 사진기가 발명되었어도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노장으로서 원초적이고 수공업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백살 넘은 사람이니 무언가 책임질 의무 없다. 하지만 여러분은 현대미술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똑똑히 바라보는 노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Q. 작품에 돌입하기 전에, 시작과 마무리에 대한 계획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오늘 선보인 신작들은 눈물이 핑 도는 단계를 거친 작품들이다.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신호는 코 끝이 짜릿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다. 작품의 완성은 합리적·이성적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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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동쪽-서사시' Mountain East-Epic, 2019, Oil on canvas, 162.2x130.3cm / 사진=가나아트센터
Q. 신작에 노랑색이 두드러져 보인다. 화려한 색깔이 많아진 이유가 있는지?

오늘도 노란 넥타이를 맸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넥타이다. 오랫동안 로우 엠버, 다크 브라운을 즐겨 썼다. 얼마 전부터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아주 컬러풀한 작품을 하고 싶다. 다음 전시에는 더욱 휘향찬란한 색채의 작품이 나올 것이다.

한국 사람은 백색을 좋아한다고 칭송하면서,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개성 없는 그림들이 많다. 한가지 컬러로 이루어진 단색화도 주목 받고 있는데, 신라와 고려 직공들의 예술 정신이 가져온 것이 단색화의 주제다. 단색화는 중요한 사조이며, 그 것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예술가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색채가 단순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 의상이 얼마나 컬러풀하며, 오방색을 즐겨 사용했는지 잊었는가? 프랑스 인상파가 태양 광선 아래에서의 색깔이라면 우리는 자연의 색깔를 쓴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컬러풀하게 살아온 우리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물론 이조백자, 고려청자의 색깔도 중요하지만 우리 산수를 보라. 내가 일전에 강원도 화재사건이 나기 전에 방송국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았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국토 색깔을 보니 기가 막히더라. 감동적이다. 이런 축복받은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기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

신작 유화 '산의 동쪽-서사시'는 아침인데 황혼같이 느껴져 노란색을 썼다. 아침이지만 저녁처럼 보인다. 기하학적 형태의 그림이며, 맨 밑 오른쪽에 있는 삼각형은 그림자다. 중간에 있는 하얀 세로가 감나무이고, 맨 오른쪽 하얀 세로가 소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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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각형의 나부'(Nude of an Inverted Triangle), 2018, Oil, gesso and charcoal on canvas, 145.5x112.1cm / 사진=가나아트센터
Q. 여인의 누드를 그린 까닭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누드 작품을 직접 움직여 보면 천근만근 무겁다. 캔버스에 젯소를 바르고 목탄으로 그려 지우기를 3년 반복한 작품이다. 역삼각형 구도는 예전부터 그려온 것인데, 불안정하지만 깊이가 있다. 정삼각형은 안정적이다. 몬드리안이 이야기하는 수직 수평을 항상 의식하고 있기에, 예전에는 역삼각형 구도만 그리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와 그들의 할머니들이 만든 것이 우리나라다. 여러분이 할머니와 어머니의 분신이며,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말을 하면 안되겠지만 한국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성을 내가 참 좋아한다. 외조모가 아주 아름다운 분이었고, 어려운 상태를 극복하는 우리 조상이 바로 할머니다. 그래서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을 몇 해를 두고 그렸다. 얼굴은 거의 없다시피 해 한국인의 얼굴로 승화시켰다. 그림은 젯소 때문에 저절로 무거워지고, 표면의 마티에르가 박수근처럼 두터워졌다.

박수근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나대로 두터운 마띠에르를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겠다. 변명하자면 인생처럼 작품도 완벽한 완성이란 없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4년 그렸는데 그 역시 아직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과거의 한국 초상화도 작가 미상인 작품이 많은데, 우리나라 전통 초상화의 영향을 받은 그림도 앞으로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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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Metaphor), 2018, Oil on canvas, 162.2x130.3cm / 사진=가나아트센터
Q.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오늘 같이 좋은 날, 동료 작가들과 관련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지?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야기를 많이들 물어본다. 상당히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그간 내가 미디어에 이중섭 작가의 들러리처럼 나오는 것이 불만인 적도 있었다. 나는 나대로 주역이다. 처음에는 조연처럼 보였지만, 점차 주연으로 보이는 그런 영화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 예술은 장거리 경주니까 말이다.

가나아트센터 바로 뒤에 내 작업실이 있는데, 백살 넘어서도 매일 그림 그리고 있을 정도로 아주 건강하다. 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도 없다.

하루 몇 시간 작업하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 피카소도 밤새워 그림 그리던 작가다. 그런 점에서 피카소를 존경한다. 그림 안 그릴 때는 노자처럼 무위도식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내가 독서를 많이 한다고 알려졌는데 요즘은 별로 많이 하지 않는다. 사실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글보다는 영어로 책을 읽는 것이 편하다. 젊을 땐 독서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주로 일본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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