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3 15:21  |  아트·컬처

[인터뷰] 안창홍 작가 "화가의 심장은 무엇으로 뛰는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개인전 '화가의 심장' 개최

[웹데일리=이소영]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개인전 '화가의 심장'을 여는 안창홍 작가와 만났다.

center
안창홍 작가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맨드라미 꽃 그림으로 알려진 화가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색칠한 조각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명이자 대표 작품명이기도 한 '화가의 심장'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물어봤다.

center
'화가의 심장 1'(Heart of the Artist 1), 2019, acrylic on FRP, 300x220x60(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center
'화가의 심장 2'(Heart of the Artist 2), 2019, acrylic on FRP, aluminum, 138x138x150(h)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Q. 전시 대표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

전시명이자 대표 작품명이기도 한 '화가의 심장'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사는 미술가의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를 직시하고 번뇌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화가의 심장이 느껴지는가! 미술가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다가 대부분 차가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화가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노동집약적 작품이다. 숭고미를 담았다.

Q. '화가의 손' 연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천정이 높은 갤러리 지하 전시장에는 대형 조각 작품들이 있다. '화가의 손' 연작은 3점이다. 미술가들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작가의 주관적 생각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작품 구상은 오래 전부터 했지만, 거대 조각으로 현실화 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드디어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됐다.

내 작업실에는 물감 찌꺼기를 모아 버리는 쓰레기통이 있다. 일반 쓰레기와 섞이는 것을 작가로서 용납할 수 없어 따로 마련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쓰레기통을 보는데, 그 안에 백골이 된 내 자신의 손을 환각으로 보았다. 사회와 격리돼 매일 노동하는 고달픈 화가의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 3점은 시간과 운에 따라 극명히 갈리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시간과 운이 빗겨가면 불행해진다. 미술가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흐도 생전에 인정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지 않았는가.

center
'화가의 손 1'(Hand of the Artist 1), 2019, acrylic on FRP, 300x220x45(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첫 번째 '화가의 손'은 컬러풀하다. 평범한 미술가의 손이다. 백골이 되어서도 붓을 잡고 있는 손과 끝까지 꽉꽉 짜서 쓴 물감, 오브제로 사용한 조화(造花)가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center
'화가의 손 3'(Hand of the Artist 3), 2019, acryilic on FRP, 300x220x45(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두 번째 작품은 잿빛이다. 실제 잿물을 사용해 색깔을 만들었다. 작품 구성요소는 같지만, 바퀴벌레와 파리가 곳곳에 달라붙어 있다. 시간과 운이 안 맞은 비참한 인생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패한 삶이라도 작가 정신은 꺾일 수 없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작가의 본질적 삶은 변하지 않는다.

center
'화가의 손 2'(Hand of the Artist 2), 2019, imitation gold leaf on FRP, 300x220x45(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세 번째 작품은 화려한 금박을 붙인 금빛이다. 성공한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과 운으로 갈리는 화가의 삶을 생각하니 작품을 만들며 감정이 격해진 순간도 종종 있었다.

손 뼈는 인체 해부용 모형을 구입해서 작품에 삽입했다. 원래 뻣뻣한 것을 내가 조작해 작품에 붙였다. '화가의 심장'의 심장 조형물은 사실 실제와 조금 다르다. 실제 심장은 혈관이 많고 아주 복잡하다. 너무 사실적 디테일에 매달리다 보면 이야기하고 싶은 디테일을 잃어 버리게 되기 때문에 간결하게 표현했다.

Q. 현재 당신의 삶은 어떤 작품에 비유할 수 있는가?

마음은 잿빛이지만, 현실은 사실 황금빛이다. 왜냐면 이 정도 크기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화가의 경제적 수준을 뛰어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고약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아서 몇 년 동안 작품이 잘 팔려 이번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노후 대책으로 작품 판 돈을 모아두지 않고 새로운 작품 제작에 투자한 것이다.

작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행운의 화가라는 뜻이다. 그 점에 감사하며 다시 작품에 투자해 계속 사회 환원을 이룰 예정이다. 화가가 그림으로 돈이 벌었다면, 다시 더 좋은 그림으로 만들어야 한다. 난 술값 이외에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나는 운이 좋은 화가다. 오늘 간담회에도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줘서 기쁘다. 평생 한길을 걸어온 보람을 느낀다.

Q. 이번 전시에 대형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업실도 아주 클 것 같다.

경기도 양평에 100평 규모, 5미터 높이의 작업실이 있다. 가족은 서울에 있는데, 나 혼자 양평에 살고 있다. 스스로 쫓겨난 것이다. 쫓겨나려고 노력한 것이다(웃음). 집에 안 간지 몇 년 되었다. 명절 때에도 식구들이 작업실에 온다. 붓은 직접 만져보고 사야 돼서 가끔 서울에 나온다.

Q. 왜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가 아니라 조각을 선택했는가?

지하 전시장의 대형 설치물 '화가의 손' 연작은 부조이고, 심장 조형물은 환조 장르다. 회화가 아닌 것은 시선을 느끼는 전혀 다른 맛이 있다. 그림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선사한다. 영화와 연극이 주는 감동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제작 과정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번 전시 작품도 결국은 입체 회화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육체적 노동이 곱절로 힘들었다. 그림이라는 것은 힘든 과정을 거치는 만큼, 육체적 노동을 쏟은 만큼, 감동의 폭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작품 스케일이 크다고 해서 감동이 오지는 않지만, 화가의 노고가 스며 들어야 감동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작업은 내가 직접 하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작가 스스로 작업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겠다.

전시를 위해 금박 기술을 배워 내가 직접 붙였다. 전문가가 금박을 붙이면 너무 매끈하게 할까봐 금박 기술을 익혀 스스로 붙였다. 이번 기회에 오히려 내가 금박 기술을 갖추게 됐다.

이번에 정말 고생했다. 내가 부산 출신이기에 동향 후배 조각가에게 의뢰해 조형물을 함께 제작했다.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전 준비를 시작했지만 조형물 제작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때문에 전시가 열리기 전 4개월 동안 하루 평균 2시간 밖에 못 잤다. 안 그러면 전시 시작 전에 작업을 마칠 수 없었다. 거의 불가능했던 일정에 작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작가로서 평소 정신무장이 잘 되어 있던 결과로 본다.

Q. 미술가로서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화가도 여러 유형이 있다. 유쾌하고 밝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평생을 어두운 곳을 그리다 죽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 더듬이는 사회의 응달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소설가도 삶과 죽음을 다루는 사람도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지하와 2층의 전시가 달라 보이지만 전시장 층마다 결국은 같은 이야기다. 삶에 대한 이야기, 실존과 존재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으로 주제를 이야기한다.

center
'이름도 없는...' 2018-1 Sad Evaporation 2018-1, 2018, oil on canvas, 38x38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Q. '이름도 없는...' 연작의 사람 얼굴이 동그스름하다.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닮은 것도 같다.

수 십 년 동안 작업하는 것이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에 관심이 많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얼굴을 보면 인생 역정이나 성격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얼굴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작가든 얼굴 자기 자신을 닮게 그릴 수 밖에 없다. 가장 익숙한 모습을 그리게 된다. 연작의 제목이 시적이지 않은가? 참 가슴 아픈 그림들이다. 정치 사회적 모순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다 보면 어떤 때는 가슴이 뭉클뭉클하다. 때로는 세월호와 같은 어떤 특정 사건을 떠올리며 그린다.

시멘트로 만든 얼굴 조각과 '이름도 없는...' 시리즈를 계속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힘없이 죽임을 당해 땅속에 묻힌 사람들이 많다. 죽어야 되는 이유도 모르고 폭력과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익명의 얼굴이다. 각자 이름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다. 시멘트로 만든 얼굴 조각은 땅을 음각으로 파서 시멘트를 부어 만든 작품이다. 정원의 솔방울, 병뚜껑, 돌멩이를 얼굴에 삽입했다.

그간 시멘트 얼굴 조각은 40점, '이름도 없는...' 얼굴 그림은 20여 점 정도 그렸다. 늘 얼굴을 많이 그리는데, 이번에 작품 이름만 바뀐 것이다. 대형 마스크 작품 '눈 먼 자들' 연작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Q. 요즘에도 쓰레기통에서 백골이 된 화가의 손을 보는지?

작품의 소재가 된 쓰레기통은 여전히 작업실에 있다. 물감 찌꺼기는 조금씩 모이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금새 차지 않는다. 그때 환각을 보고 공포보다는 화가로서 삶의 고달픔을 느꼈다. 이렇게 백골이 될 때까지 그려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림밖에 없나 싶더라. 사실 화가이기에 행복하지만, 반대급부적으로 내 삶이 싫을 때도 있다. 애정 어린 푸념이다. 나를 더 작업에 임하게 하는 반대적 푸념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천하고자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 의료용 손 모형을 구입하고 작업의 첫 발을 내디뎠다. 예술가는 백골도 보고 귀신도 보고, 이것저것 많이 본다. 이것은 환각이라기 보다는 사실이고 일상이다. 내가 화가로 무덤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다 죽겠다는 반대적 결심을 상징한다.

Q. 학연, 지연이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가로서의 삶은 어떠한가?

제도권 미술 대학이 하찮게 보여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림이라는 것은 꼭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지혜의 보고이기에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젊어서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내 생각이 결국 맞았다. 내가 받은 정규 교육은 고교 졸업이 전부다. 우리나라 미술 대학처럼 엉터리 교육을 하는 나라가 없다. 그림은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림은 방식이 아니라 자기 언어다. 이렇게 그린다 저렇게 그린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술대학 입시를 위해 서양 석고상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어이가 없더라. 독학의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독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웃긴다.

미술가에게 학연이 필요 없다. 나는 미술가로서의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태어났고 학연을 중시하는 세상이 우습게 보였기 때문에 굳이 미술대학에 가지 않은 것뿐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활자이며, 활자는 어디나 있지만 존경할만한 교수가 과연 미술 대학에 있을까 의문이었다. 책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Q. 꽃 그림으로 유명한데, 더 이상 그리지 않는가?

맨드라미 꽃 그림 팔아서 이번 전시 작품을 준비했다. 맨드라미 그림이 솔드아웃되었다. 너무 인기가 좋아 요즘은 안 그리고 있다. 맨드라미를 그릴 때에도 단순히 예쁜 꽃은 아니고, 우리 사회의 아픔이 녹아 있는 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간 너무 끔찍한 그림을 그리다 꽃을 그리니까 많은 이들이 좋아해줬던 것 같다. 꽃으로도 삶을 이야기했고, 꽃과 인물 그림은 사실 일맥상통하다. 누드도 그렸다. 일반인을 직접 섭외해 누드를 그려 전시했다. 내 그림은 항상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에 관심 많고 그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골치 아프고 끔찍한 사회를 담은 그림이 내 작품의 기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구분해야 한다. 여행과 관광의 의미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꽃이나 옷처럼 알록달록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땀 냄새 나지만 자세히 보면 감동이 있는 것을 그리고 싶다. 뭉클한 것, 가슴 아픈 것을 그리고 싶다. 고층건물 뒤 응달은 건물과 영원히 공존한다. 나는 응달 속에 가려진 눈물을 그리고 싶다. 표리부동함에 관심 많다. 결국 내 작품 세계의 뿌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 맞닿아 있다. 인간성 회복이 화두다.

맨드라미도 사람의 삶을 은유 한다. 내 작품에는 항상 은유가 스며있다. 단순히 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 꽃에 삶을 투영해 작품을 해왔다. 지금까지 작품 소재 자체가 삶과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center
'마스크' 2018-32 Mask 2018-32, 2018, Chinese ink on cement, 19.5x10.5x4(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center
'마스크-눈먼자들' 2018-1 Mask-Blindness 2018-1, 2018, mixed media on FRP, 155x110x50(d)cm / 사진=아라리오갤러리
Q.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화가의 삶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연작이 첫 포문을 열었고, 지속적으로 화가의 삶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그림을 하지 않을까 싶다. 평면을 벗어나 그때 그때 적절하게 장르에 도전하려 한다.

오는 9월 5일부터 3개월 동안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할 예정이다. 대형 마스크 작품 49개와 2미터 크기의 두상 조형물 '눈 먼 자들'의 새로운 연작을 기대하시라. 일상 속 사람에 대한 느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추상적 얼굴이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이다.

news@webdaily.co.kr

<저작권자 © 웹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