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4 15:47  |  아트·컬처

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⑳ 중국의 역사도시, 서안

[웹데일리=글·그림 임진우]
서안은 오래된 역사의 도시다. 오늘날의 중국을 있게 한 정신과 철학의 근원지이며 가장 중국다운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노자에서 장자로 이어지는 도교의 본원지로, 당시 새로운 불교철학을 포용하고 받아들여 수준 높은 정신문명과 거대한 제국의 통치를 위한 물질문명이 결합되어진 도시다. 역사도시임을 말해주듯이, 도시 곳곳에는 유적과 문화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신시가지는 첨단고층빌딩들이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고 있어 침묵 속에 보존되어있는 과거 유물들과 함께 미래로 향하는 역동적인 현대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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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박물관, 태화원기방 / 그림=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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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박물관 / 그림=임진우

인천공항에서 3시간 남짓 이동하면 서안공항에 내린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걸리는 시간도 30분 정도 내외다. 시내에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답게 박물관들이 많지만 비석이 숲을 이루었다하여 이름 지어진 비림박물관을 먼저 방문한다. 공원처럼 정돈된 정원 내에 배치되어진 박물관 내부에는 비석, 묘비, 돌 조각 등 다양한 문화유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각 비석마다 전서, 예서, 초서, 행서의 필체로 새겨진 경전의 기록을 볼 수 있다. 당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들의 솜씨는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품이 느껴진다. 이 곳 비림박물관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비석 조각과 도안으로 고대문헌 사료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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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문 거리 / 그림=임진우

인근 서원문 거리는 우리의 인사동처럼 명, 청 시대의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상가거리로 연속된 2, 3층 소규모의 낮고 친근한 건물에서 서예용품, 그림, 골동품, 도장, 액세서리를 진열해놓고 판매하고 있다. 오후 햇볕이 가로수들 사이로 흩어지며 길거리 빈티지 모습의 상가 분위기를 레트로한 분위기로 연출해준다. 이런 날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한가롭게 느릿한 걸음으로 걸을수록 좋다.

문화체험으로 공연 관람 하나 쯤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겠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라는 화청지 연못을 무대로 하여 연출되는 장한가무쇼는 서안 관광객이라면 꼭 봐야하는 공연이다. 당나라(618~907)의 6대 황제인 당 현종(685~762)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담은 백거이의 시를 주제로 삼아 재구성한 작품이다. 엄청난 숫자의 배우들, 음향효과, 다양한 소품들, 야간에 화려한 조명과 분수 쇼를 활용한 무대장치로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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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성벽 / 그림=임진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며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성벽인 서안성벽을 답사하면 이 곳이 역사도시였음을 또 한 번 증명한다. 당나라와 원나라 시대에 축조했던 성벽의 기초 위에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방대한 군사방어 시스템으로 조성되었고 그 이 후에도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신분의 구별이 엄격해서 남문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서문은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3층 규모로 이루어진 우람한 전각과 붉은 깃발이 성벽의 위용을 드높이고 있어 어디선가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총 길이 13.2Km로 이루어진 성벽에는 아직 늦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점령하고 있다. 벽돌로 이루어진 성벽 위 보행로에는 그늘을 찾거나 양산을 쓰고 걷는 관광객들 외에도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무리들도 눈에 띈다. 길이와 높이, 넓이를 우리네 성벽과 비교하면 역시 스케일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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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불야성 / 그림=임진우

당나라 풍경을 재현한 고전 거리를 형형색색의 조명장치로 탈바꿈하여 화려한 밤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대당불야성'으로 말 그대로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당태종, 당현종, 측천무후 등 제왕과 역사의 인물들을 조각상으로 구현한 거리, 조경시설과 스트릿퍼니쳐, 간단한 맛 집들로 이루어진 보행로에 최첨단 네온사인과 디지털 파사드가 가세하여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하늘에는 레이저를 쏘아 올려 SF 영화에서 나올 법한 초현실적인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누구라도 잠시 주파수가 다른 영역으로 시공을 이동하여 미래도시를 걷는 상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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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사원 / 그림=임진우

중국의 5악 중 하나인 화산 답사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경험이다. 산을 오르기 전에 도교사원에 들러 복을 빌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에 참여해보는 것도 추천할 만 하다. 화산의 산맥을 배경으로 하고 전통적인 기와지붕과 붉은 열주로 이루어진 중정은 이른 아침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악기소리에 침묵을 깨고 예식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세상인연과 결별하고 혹독한 자기수련과 끝없는 정진을 통하여 신선이 되는 길을 선택한 수련생과 도사들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다. 동방불패, 소오강호 같은 무협영화에서 나오던 화산파, 전진파, 무당파 등이 활약하던 중국 도교의 발상지인 만큼 축지법, 혹은 장풍을 구사하는 무예의 고수들이 최고의 무공비록인 규화보전을 전수하며 어디선가 은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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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 그림=임진우

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는 일이 남았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서봉으로 향하는 버스에 옮겨 타고 굽이굽이 아슬아슬한 길을 올라야 한다. 이윽고 입구에 도착, 하차 후 숨이 가쁘게 수많은 계단을 올라 케이블카에 탑승하면 단숨에 공중부양이 가능하다. 조감도로 내려다보이는 눈앞에는 첩첩의 기암풍경이 펼쳐지는데 시야를 압도당한 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바위를 근접하여 관찰하면 놀라운 것은 깎아지른 바위와 그 경사면에서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나무들의 생명력이다. 장엄하게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보여주는 자연의 위대함은 언젠가 소멸될 인간의 축조물과 비교되며 수 천 년 동안 변함없이 건재하다. 절벽 끝에 안전을 위한 난간에는 사랑을 언약한 자물쇠들과 붉은 리본들이 도열하여 산 정상을 오르는 발걸음을 환영하듯 손을 흔들며 인도한다. 과연 연인들끼리 약속한 사랑의 흔적들은 저기 굳게 잠긴 수많은 자물쇠처럼 튼실하게 지켜졌을까 의구심은 들지만 그랬기를 바란다. 다시 시선을 멀리하면 겹겹이 산자락의 스카이라인들이 오버랩 되며 한 폭의 진경산수화가 완성된다. 자연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 심신을 새롭게 채우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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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탑 / 그림=임진우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뛰어나고 수 천 년의 역사와 문화가 집적되어 있는 도시, 종교와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한 시대를 다스리고 통치했던 역사도시 서안은 오늘날, 옛 명성에 비해 조명은 덜 받지만 거대한 제국을 운영한 중국의 정체성을 공부하기에 충분하다.

서안으로의 답사여행은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긴 안목을 갖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선사한다. 짧은 여정이지만 중국의 장구한 역사를 배우고 미래 시대를 통찰하는 창의적인 시선과 선도력을 얻는 기회로 삼는다면 내 안의 '새로운 나'를 재발견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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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스케치여행> -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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