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18:40  |  뮤직

[인터뷰] 케이팝 A&R 전문가 펠레 리델 "케이팝 성공할 줄 알았다"

"케이팝은 단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어요. 케이팝은 '현상'입니다"

[웹데일리=취재 한예은 스웨덴 리포터 / 정리 이지웅 기자]

# "케이팝은 대중음악 장르를 넘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종합선물"

# "유튜브·SNS 발전이 케이팝 인기 견인"
#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끼리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성 있어"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 소녀시대부터 현재의 트와이스, NCT 127까지 케이팝의 역사와 함께해 온 케이팝 A&R 전문가 펠레 리델(Pelle Lidell)을 만났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그는 현지에서도 케이팝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케이팝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예견돼 있었다고 말했다.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훨씬 전, 그것도 한국과 정말 멀리 떨어진 스웨덴에서 펠레 리델은 케이팝 A&R을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케이팝의 성공을 확신했고, 강산이 뒤바뀌고도 남을 세월 동안 케이팝이라는 음악을 계속해 올 수 있었을까?

펠레 리델에게 케이팝 A&R, 현재 케이팝의 성공 요인, 그리고 케이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를 물었다. 케이팝의 성공을 예견한 그가 케이팝의 미래 또한 맞출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center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에코 뮤직 라이츠 랩에서 만난 펠레 리델 / 사진제공=한예은 리포터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현재 에코 뮤직 라이츠 유럽(EKKO Music Rights Europe)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케이팝 곡들의 A&R 작업을 진행하죠.

A&R(Artists & repertoire)은 간단히 말하자면 전체적인 총괄 역할을 맡는다는 뜻입니다. 음악 프로듀서들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면, 저는 어떤 곡을 만들지 프로듀서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그들이 만든 노래에 피드백을 주며 곡을 함께 완성합니다.

Q. 어떻게 케이팝 A&R을 시작하게 됐나?

케이팝은 2004년 유니버설 뮤직에 재직하던 중 알게 됐습니다. 친구가 "한국의 팝 음악 시장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며 케이팝을 알고 있냐고 물었죠.

그때 케이팝을 알게 됐고,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2005년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게 업무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 보낸 곡들이 바로 동방신기의 '미로틱(Mirotic)', 보아의 '잇 유 업(Eat You UP)',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입니다.

Q. 2005년 당시 케이팝 인지도는 높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저는 좋은 음악이라면 편견 없이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케이팝의 잠재성과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눈여겨봤죠.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동료는 이런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가 아무리 말해도 케이팝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고, 케이팝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죠. 심지어 어떤 동료는 "케이팝 작업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으면 더 이상 미국, 영국 히트곡을 못 쓰게 되지 않냐"며 말리기도 했어요. 저는 그 대답으로 "그럼 케이팝 히트곡을 그만큼 많이 쓰면 되지"라고 말했고, 그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케이팝 히트곡들을 작업해왔습니다.

이제는 케이팝의 위상이 어마어마하죠. 12년 전 케이팝에 대해 말할 때 들은 체도 안 하던 사람들이 요즘엔 먼저 연락이 와요. 제게 "펠레, 케이팝 전문가 맞지? 어떻게 해야 케이팝 관련 일을 구할 수 있는지 좀 알려줘"라고 묻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너무 늦었다" 밖에 없어요.

Q. 케이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보통은 한국 기획사에서 먼저 곡의 콘셉트가 담긴 제안서를 보내줘요. 그러면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우리 소속 음악 프로듀서들이 곡 작업을 진행합니다. 또는 우리가 따로 작업한 곡 중 좋은 곡이 있으면 한국 기획사들에 보낸 후 먼저 연락을 주는 회사에 곡을 넘기기도 하죠.

Q. 케이팝 작업 시 가장 중요하게 신경 쓰는 건 뭔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딱 세 가지에요. 첫째는 '경청'입니다. 한국 기획사가 제안하는 콘셉트를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케이팝에 한해선 한국 회사의 말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둘째는 작곡할 때 곡이 한국어 가사와 잘 어우러질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어를 잘 몰라서 보통 영어로 데모곡을 만들지만, 곡 작업 시 한국어 가사로 불리면 어떤 느낌일지 충분히 고려해야 해요. 한국어가 음악적으로 어떻게 들리는지 이해하는 것은 필수죠.

마지막으로는 노래를 만들 때 안무 동선도 철저히 고려해야 합니다. 보통 곡을 만들 때 이 곡이 어떤 무대에서 어떤 안무가 어울릴지 머릿속에 그리면서 점점 구체화하죠.

Q. 가장 인상 깊었던 케이팝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굳이 꼽자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태민'이에요. 올해 초에 같이 작업한 곡 '원트(WANT)' 해석을 정말 훌륭하게 해냈어요.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 모두 정말 톱급이었죠.

Q. 케이팝 작업을 하며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가?

음악가로서 많은 사람이 제가 열심히 만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케이팝 팬들은 특유의 열광적인 호응으로 유명하죠. 제 노래를 즐기고, 크게 따라부르는 걸 볼 때마다 무척 짜릿합니다. 또한 우리 음악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남미, 북미, 유럽에서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볼 때 매우 보람차요.

Q. 케이팝 작업을 할 때 힘든 점은?

받은 곡 제안서가 명확하지 않으면 곡 작업할 때 어려움이 꽤 있습니다. 요청 방향이 애매하거나, 너무 다양한 의견이 담겨있는 제안서를 종종 받곤 하죠. 이럴 때는 어떤 이유로 이런 제안서를 썼을지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측해야 해요. 그렇다 보니 작업하기가 다소 막막할 때가 있죠.

Q. 케이팝이 뭐라고 생각하나?

케이팝은 단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어요. 케이팝은 '현상'입니다. 노래, 스타일링,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팬덤 등을 포함한 모든 문화 현상이 전부 케이팝이란 뜻이죠.

예를 들어, 기존 한국의 충성심 넘치는 팬덤 문화가 케이팝이 성장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어요. 더불어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교감하며 즐기는 문화 또한 전파됐죠. 이런 현상만 봐도 케이팝은 대중음악 장르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종합선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center
펠레 리델의 사무실 벽에는 지금도 '유튜브 제1회 영상 시상식'에서 소녀시대의 'I GOT A BOY'로 수상한 상장이 걸려있다. / 사진제공=한예은 리포터

Q.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첫째는 전 세계 10대 케이팝 팬들의 열정입니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그들만의 대중음악 문화를 향유하고 있어요. 현재 전 세계 1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음악 문화는 케이팝이죠. 그들은 정말로 케이팝을 즐기고 향유하며 행복해합니다. 기성세대인 제가 어렸을 때 영국 팝스타를 쫓아다녔듯, 현재 케이팝 팬들도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거죠.

둘째는 유튜브와 SNS의 발전입니다. 케이팝의 세계적인 인기는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 기록을 세우며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케이팝 스타들이 유튜브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죠.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2013년 '유튜브 제1회 영상 시상식'을 말해야 하겠네요. 당시 시상식에서 제가 작업했던 소녀시대의 'I GOT A BOY'가 톱스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와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를 제치고 올해의 영상에 선정됐어요. 그때부터 케이팝의 성공은 예견됐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본질인 음악성입니다. 아무리 마케팅 전략을 잘 짜고, 뛰어난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를 선보인다고 해도 음악성 자체가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케이팝 업계가 음악성을 높이기 위해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온 것도 케이팝이 성공한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Q. 케이팝이 더 성공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많이, 더 큰 규모의 케이팝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개최해야 해요. 저는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끼리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사들이 힘을 모아 글로벌 수준의 케이팝 페스티벌이나 월드투어를 기획하는 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유럽 내에서 케이팝 페스티벌을 개최하면 6만 명은 거뜬히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해외 케이팝 팬들은 스스로 케이팝 커뮤니티를 만들고, 앨범·굿즈를 열성적으로 구매하고 있어요. 이제는 이들이 진짜 무대를 만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직접 두 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무대를 보면 훨씬 더 케이팝에 매료될 거에요.

또한 케이팝과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의 협업도 추천합니다. 어른들은 아직 케이팝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은 누구든지 알고 있죠. 글로벌 한국 기업과의 협업은 케이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케이팝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케이팝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인가?

케이팝은 지금의 기세를 몰아 앞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여요. 미국이나 유럽 시장 진출 기회가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에 케이팝 회사들이 해외 유명 아티스트나 음악 관계자들과 활발히 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어 곡을 따로 준비하는 추세도 더욱 가속화 될 거고요. 특히, 케이팝 돌풍이 거센 만큼 케이팝 회사들의 마케팅 방식이 앞으로 글로벌 음악 시장의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지웅 웹데일리 기자 news@webdaily.co.kr

<저작권자 © 웹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WD MAGAZINE

  • img
  • img
  • img
  • 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