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2022년이 에너지 위기의 해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없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도시 지역은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노출돼 조명이나 난방이 없는 밤을 강요 당했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에서 천연 가스 가격이 급등했으며 겨울철에 대비해 가스비축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에너지 집약적 공업 생산은 지속될 수 없었다. 파키스탄은 자국의 천연 가스 생산량이 미미해 전력 공급이 불충분으로 정전이 일상화 된 상태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수요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몇 달 전부터 생산국 공급 능력을 웃돌았다. 침공 후 LNG 시장에 참가하지 않은 독일을 필두로 유럽 각국이 파이프라인을 경유한 러시아산 가스에서 해상으로 운송되는 LNG로 전환하면서 파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의 현물 수요가 큰 타격을 입었다.
가스 가격 상승에 유럽은 공황 상태가 됐지만,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조달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만큼의 자금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의 수요 감소도 도움이 되었다. 이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전력 부문의 경제가 위축되고 가스 소비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의 코로나 제한이 해제되면 2023년 겨울엔 주택 난방조차 곤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 2022년 10월 산업계 가스 소비량은 2019~2021년 평균과 비교해 헝가리 93%, 루마니아 78%, 독일 39% 급감했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침체로 인한 경제적 손해의 규모다. 전력에 관해서는 유럽이 이 겨울을 정전없이 극복할지 여부는 프랑스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원전 문제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 현시점에서 원자로의 절반이 폐쇄되었다. 프랑스가 원자력발전량을 본래의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전쟁은 여러 면에서 유럽의 오래된 에너지 기반 시설에 큰 피해를 입혔다. 영국은 러시아산 가스로부터의 환승을 도모해 카타르와 LNG의 장기 계약을 맺으면서, 북유럽의 일부 나라에 수출하는 입장이 되었다.
스페인은 대서양 항구에 LNG 터미널을 두고 북아프리카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어 위기 이후 유럽의 에너지 지정학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파이프 라인은 소량에 불과해 스페인 가스 산업은 대륙에 대량으로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LNG 터미널이 하역을 따라갈 수 없어 LNG선이 체류하며, 천연가스 공급이 막히는 사태도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스페인을 통과한다는 전제하에 중장기적으로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재구성하는 것은 에너지원으로서 가스 소비를 줄이려는 유럽 연합(EU)의 비전과 모순된다.
2022년 10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는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사이의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에서 합의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가스와 수소의 수송에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두 달 후 가스는 더 이상 EU에 의해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되며 EU구상과 불일치를 드러냈다.
전쟁은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협조의 어려움도 부각시켰다. 연대의 정신에 근거한 에너지 통일 시장의 실현을 목표로 해온 EU조차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EU는 2022년 12월 발동한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 금지령에 대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원유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크로아티아와 불가리아에는 일시적인 예외 조치로서 해상 수송되는 원유의 수입을 인정했다.
EU조차도 보다 광범위한 협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예를 들어 EU, 주요 7개국(G7), 호주가 합의한 원유의 상한 가격 조치(프라이스 캡 제도)에서는 일정 가격을 웃도는 원유의 해상 수송·보험 서비스를 금지했지만, 석유·천연 가스 개발사업 '사할린 2'에서 산출하는 원유는 당분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혼란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라시아 대륙의 국가들의 곤경과 미국의 강력한 입장에서의 심각한 이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은 10년대의 셰일 오일 붐 덕분에 수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원유·가스 생산국이었지만,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해 세계 최대의 가스 수출국이 되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의존해 온 러시아산 가스 대신 멕시코 만안산 가스의 수입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일부 유럽 지도자들 시각으로 보면 유럽이 이 같은 가스에 대해 지불하는 자금이 미국의 LNG 기업에 도움이 된다. 이런 현실 앞에서는 우크라이나 방위를 위해 단결할 것이라는 전망은 어둡다.
미 정부 관점에서 보면 유럽 국민이 현재 강요 당하고 있는 물질적 희생은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려는 정부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상업적 이익에 부합하는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한 에너지 정책을 추구 할 여유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2년 10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 것을 '더블 스탠다드'라고 비판했지만 이는 화석연료 에너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로 배출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혁명은 국가 간 대립이라는 지정학적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에너지혁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레어메탈(희소금속)은 지구상에 분포돼 있는데 다 현시점에서는 중국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8월 미국에서 성립한 인플레이션 억제법은 발전과 제조업의 저탄소화·탈탄소화에 필요한 자본을 전세계에서 빨아들이는 국가주의적인 내용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럽 각국 정부도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고려하지 않고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 이익의 우선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미국과 다르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유럽은 정전을 피하려고 석탄에 의존하는 한편, 빈곤국은 여전히 석탄 삭감 목표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빈곤국들은 어떠한 형태로 에너지 배급을 채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에게 에너지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정당성의 핵심이다. 지난 50년간 비서구 국가의 산업화가 대규모로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런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나라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
에너지 정치 경제 한 전문가는 "에너지가 제한되어 있는 한, 이에 대한 격렬한 쟁탈전은 미래 표준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는 에너지 정책 실패 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 위기가 정치적 불안정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