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내공을 쌓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언젠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지니TV 오리지널 ‘사랑한다고 말해줘’ 속 배우 신현빈의 연기는 과하게 튀지도, 존재감 없이 묻히지도 않았다. 그동안 다수의 드라마에서 개성 또렷한 연기를 보여줬던 경험이 녹아났다.
지난 16일 만난 신현빈은 맑은 눈빛과 상큼한 미소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중요한 건 마스크의 분위기를 넘어서는 그 자체의 매력이었다. 더없이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들로 듣는 이를 매료시켰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1995년 일본 TBS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소리 없는 사랑을 다룬 클래식 멜로물이다.
“별 말 없이도 소통이 되기도,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안 통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궁금증을 느끼고 작품들 둘러보던 찰나, 제안을 받게 됐어요. 수어와 음성언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작품 한 회 차를 저 혼자의 대사로 이끌어가는 등의 내용구성에 부담이 있었어요. 그 때문에 평소와 달리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대본 수정하는 기간을 더해 고민하다가 결국 작품을 택했어요.”
극 중 신현빈은 정모은으로 분했다. 섬세한 대사처리와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수어, 그에 맞물린 담백한 표정은 차진우(정우성 분)와의 멜로라인을 더욱 감성적인 높이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초기에는 소리를 주고받지 않아서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촬영하다보니 그만큼 사람의 얼굴을 집중해서 바라보게 되면서 오는 감정교감은 더욱 깊고 빨랐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손을 마주잡고서도 한 손으로도 교감을 오가면서, 스킨십 이상의 교감들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물론 서로간의 다툼이 있을 때 서로가 마주하는 에너지의 폭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이해하는 폭은 더 넓었어요.”
또한 현실적인 세련감이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주는 비주얼 매력과 함께, 작품 전반의 인물과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형태의 소통들은 배우이자 인간으로서의 성장측면들을 체감케 하며 호평을 받았다.
“의상팀과의 끝없는 피팅의 연속 덕분이었어요.(웃음) 개인적으로 캐릭터와 장면에 맞는 의상을 입으려고 많이 따지는 편이에요. 첫 등장과 마무리의 연결지점 등의 포인트부터, 집 안팎에서의 데이트, 알바를 하고 안할 때, 친구 조한(이재균 분)과 동생 모담(신재휘 분) 등과 마주할 때 등 장면마다 차림을 달리했어요. 그러다보니 조한과 모담, 지유(박진주 분) 등과 술을 마시는 신에서 저를 본 재휘 배우가 ‘와 이런 거였구나’하고서 놀라더라고요.”(웃음)
정모은은 우연히 청각장애가 있는 차진우를 만나면서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겨온 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진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 대답하지 않았다가 무례한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불이 나는 카페에서 경보음을 듣지 못해 위험에 처한다. 진우가 농인인 것을 알고 있던 모은이 불이 난 카페에서 위험에 처한 진우를 구해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진우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서 모은은 수어를 배워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늘려가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나간다. 진우를 연기한 정우성뿐 아니라 상대역인 신현빈도 수어를 쓰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외국어 학습과 비슷해요. 익숙한 말로 먼저 해석하면 말하기 쉬운 것처럼, 직접 음성언어로 말해놓고 수어를 따라가는 거예요. 실제 수어는 음성언어와 문장순서나 형식이 달라요. 진우와 그의 학생들, 기현의 아내 소희, 서경 등이 하는 농식 수어와 달리, 기현은 음성언어와 농식수어가 섞인 형태죠. 저는 말하는 순서와 동일한 수어로, 수어화자들의 시선에서는 배워서 하는 수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흡사 초, 중급 정도의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실제 수어선생님과 익숙함의 정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좀 더 쉬운 단어로 대체하기도 했어요.”
모은이 진우의 옛날 집에서의 고백이나, 헤어짐을 암시하는 “아 답답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다양한 노력이 필요했을 듯하다.
“음성번역으로 문자화하는 어플로 시작되는 각각의 장면들은 CG없이 했어요. 그렇기에 고백 장면에서는 정확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대사발음에 정말 신경 썼죠. ‘아 답답해’라고 찍히는 것은 사실 우성 선배 본인이 직접 말을 한 거예요.(웃음) 실제로는 잠꼬대 수준의 가벼운 언어에는 인식이 안 돼요. 각 장면들은 이후의 음악을 끄는 신과 연결해보면, 당시의 사정들과 함께 이해의 폭이 다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전개과정이 언어차원을 제외하고 보면 연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 볼 수 있어요.”
신현빈과 정우성이 소리 없이 수어만으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짙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는 정우성과 함께 느린 템포에서 서로에게 빠져드는 운명적인 사랑을 담아냈다.
“즐겁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게 이끌어주셨어요. 사전에 작품협의도 많이 했지만, 현장에서 상대배우를 편안하게 리드해주는 우성 선배의 힘이 컸죠. 그 덕분인지 가슴 아프게 작품을 보시고, 유튜브 메이킹에서의 재기발랄함으로 슬픔을 치료하시는 색다른 모습들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정우성 만만세.”(웃음)
극 중 모은은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하고 아르바이트와 단역 출연을 병행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신인 시절의 경험을 돌이켜볼 기회였을 듯하다.
“설마 저런 일이 있을까 싶으시겠지만, 제가 겪거나 친구들이 겪었던 현실적인 이야기에요. 실제 극 중 모은의 극단이 연기하는 공연장은 제가 공연을 했던 경험이 있는 곳이기도 했어요. 진우에게 대본을 건네는 신에 맞는 설정을 위해 과거 공연할 때의 대본을 찾아보니, 까맣게 될 정도로 열심히 한 흔적들이 남아있더라고요. 극 중 연극 정면처럼 무대울렁증이 있었던 때는 없어요. 다만 상대배우가 대사 부분을 많이 건너뛰어서 애드리브로 수습한 적은 있어요.”
신현빈은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결코 연기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베테랑 배우들과 거듭 호흡하고 있다.
“운 좋게 그러한 기회들이 주어진 것 같아요. 함께 호흡하면서 선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명품배우로 존재할 수 있는지, 하나의 작품에 얼마나 마음을 다할 수 있는지 직접 느꼈어요. 선배들이 뭔가 제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영향을 준 것처럼,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정모은은 준비된 신현빈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기회였다. 그는 2024년 어떤 기회를 잡고 어떤 연기를 펼치게 될까. 신현빈은 경험한 것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이 더 많기에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 편안함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또한 배우들이나 스태프 모두가 사랑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 작품이에요.”
[사진 제공 = 유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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